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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힘없이 술술 흘러나오는 가미야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말을 빨리빨리 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날 때가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엄청난 양의 이미지가 소용돌이치는데 그걸 꺼내놓으려고 하면 말이 액체처럼 주르륵 주저앉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여럿이 하는 대화일 때는 더욱 더 증상이 두드러졌다. 사람 수가 불어나면 단어 수도 불어난다. 한 마디가 귀에 들어오면 거기에서 파생한 별개의 흐름이 생겨나고 머릿속에서 수많은 이미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가미야 씨는 그런 나를 재미있어 해주었다.



가미야 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경계하지 않고 철저히 바보로 여겨주는 일이 있는가 하면 솔직하게 칭찬해주는 일도 있었다. 다른 어떤 척도에도 좌우되지 않고 나와 정면으로 마주해주었다.



우리는 밤의 기척 속에 많은 말들을 녹여버리고 온갖 것들을 없었던 일로 돌려버리며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얼굴로 벤치에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이런 때, 가미야 씨가 주장하는 “사람들이 알아주느냐 아니냐는 것이 다를 뿐, 인간은 모두 코미디언이야”라는 이론은, 틀린 말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묘하게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다. 지금, 명확하게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나는 가미야 씨와 함께한 나날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나는 가미야 씨 밑에서 제법 성장했다는 실감이 분명하게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세상과 접해보니 그게 이토록 담약한 것이었는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표정을 바꿀 수가 없었다. 가미야 씨를 만나고 싶어지는 때는 대부분 나 자신을 놓쳐버릴 것 같은 그런 날 밤이었다.



그 뒤로 마키 씨와는 몇 년 동안이나 만난 적이 없었다. 딱 한 번,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마키 씨가 어린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엉겁결에 뒤로 숨어버렸다. 마키 씨는 약간 살이 쪘지만 예전 모습이 충분히 남아 있어서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 얼굴에 압도적인 웃음을,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웃음을 짓고 있어서 정말로 아름다웠다. 나나이 다리를 사내아이의 걸음걸이에 맞춰 천천히, 천천히 걸어갔다. 그 아이가 그 작업복 남자의 아이인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마키 씨가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나는 무척 행복했다. 누가 뭐라고 하건 나는 마키 씨의 인생을 긍정한다. 나 같은 자에게 뭔가를 결정할 권한 따위는 없겠지만, 이것만은 인정해주었으면 한다. 마키 씨의 인생은 아름답다. 그 무렵, 만신창이에 흙투성이였던 우리에게 역시 만신창이이면서도 온힘을 다해 웃어주었다. 그런 마키 씨에게서 아름다움을 벗겨낼 수 있는 자는 결코 없다. 마키 씨와 손을 맞잡은 그 사내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리라.



가미야 씨와 함께 있으면 일상에서는 쓸 일이 없는 어딘가의 한정된 신경이 지독히 피폐해졌지만 세상의 번거로움을 잠시 잊게 해주는 경우도 많았다. 가미야 씨 앞에서 나는 평소보다 현격하게 말이 많아졌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아주 많았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의 답을 알고 있다고 신뢰하는 구석이 나에게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가미야 씨와는 다르다. 나는 철저한 이단은 결국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반대편으로 요령껏 돌아설 능력도 없었다. 그런 서투름을 자랑하는 것도 못했다. 거짓말을 하는 건 사내로서 한심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런 진부한 자존심이 더 한심하다는 평범한 말 따위,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못하는 것이다. 자화자찬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타협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나 자신에게도 거짓말하지 않고, 여기에 가미야 씨에게 칭찬까지 받으면 최고로 좋겠다, 라고 나 혼자 히쭉히쭉 웃곤 했다. 예전보다는 관객의 웃음소리를 많이 듣게 됐으니까 가미야 씨의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일상의 덜 떨어진 나는 그토록 가미야 씨를 웃길 수 있었는데도 무대에 선 나에 대해 가미야 씨는 웃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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