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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2190 

 

[강석기의 과학카페]코로나19는 감기가 될까

세포에서 증식을 마친 오미크론 바이러스 입자들(주황색)이 세포 표면으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오미크론은 다른 변이에 비해 폐 안쪽 깊숙이까지는 잘 침투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www.dongascience.com:443

세포에서 증식을 마친 오미크론 바이러스 입자들(주황색)이 세포 표면으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오미크론은 다른 변이에 비해 폐 안쪽 깊숙이까지는 잘 침투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대 제공

결정장애라는 말이 있다. 보통은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을 때 오히려 뭘 골라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맥락으로 쓰이지만, 둘 중 하나를 고를 때도 장단점의 합계가 비슷하거나 잘 모르면 망설이기 마련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사람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을 보면서 이 단어가 떠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시작됐을 때부터 집단면역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치명률이 2% 내외라 희생이 너무 커 거리두기 정책으로 결정하기가 쉬웠다. 사태를 끝낼 수 있는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참고 기다려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대다수가 동조했다. 

 

지난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백신접종이 시작된 나라들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감하자 다들 희망에 들떴지만 봄에 인도를 휩쓴 델타 변이가 세계로 퍼지면서 끝이 날 거라는 기대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집단면역은 여전히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접종률을 높이며 기다리는 쪽을 택했지만 분위기는 1년 전에 비해 무거웠다. 

 

 

 거리두기 해제하는 유럽

 

그런데 지난해 11월 남아공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나타났고 세계로 급격히 퍼지며 어느새 우리나라에서도 우세종이 되며 하루 확진자가 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런데 앞서 변이들과는 달리 오미크론은 전파력이 큰 대신 병원성이 작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오미크론으로 집단면역을 형성해 코로나19 팬데믹을 끝내자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달 오미크론 대유행 정점을 지나간 유럽에서는 몇몇 나라들이 거리두기 정책을 철폐했다. 그럼에도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전환이 시기상조라고 경고했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한국도 설을 전후해 오미크론 확진자가 급증하자 방역 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거리두기를 지금보다 더 강화해 확진자를 줄일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완화해 폭발적인 증가 뒤 자연스러운 감소로 넘어가게 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졌다. 결론은 일단 2주 더 현행 거리두기를 유지하며 중환자와 사망자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결정장애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해는 간다.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는 프리랜서라 델타까지만 해도 재수가 없으면 걸리는 거라며 남의 일처럼 생각했지만, 오미크론은 새로운 국면인 것 같다. 주변을 봐도 걸렸다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워낙 전파력이 강해 중국이 확진자가 나온 도시를 봉쇄하는 것처럼 전 국민을 집안에 가두지 않는 한 확산세를 꺾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거리두기를 강화해 천천히 퍼지게 하는 것과 거리두기를 완화해 정면돌파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게 나은 선택일까.

 

지난주 국제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는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심층 기사와 바이러스의 전파력과 병원성의 관계를 다룬 논문과 해설이 실렸다. 두 선택지를 두고 결정장애에 빠진 나는(물론 결정은 보건당국이 하는 것이지만) 도움을 받기 위해 찬찬히 읽어봤고 참고문헌에 있는 논문도 찾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앞으로 두세 달 동안 중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거리두기를 유지 또는 완화해 대유행이 지나가게 하는 유럽의 패턴을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논문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지만 내 의견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오미크론의 병원성이 델타 등 기존 변이에 비해 얼마나 약한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시료(사람)가 오염(백신접종 정도가 제각각)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계의 코로나19 주간 확진자 그래프(위)와 사망자 그래프(아래)를 보면(각각 굵은 검은 선) 오미크론이 꽤 약함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확진자가 대여섯 배 급증했지만 사망자는 1.5배 정도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프 세로축은 로그 척도다. 위키피디아 제공

 

 전파력이 커지면 병원성이 작아지나

 

최근 보건당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오미크론의 치명률은 0.15%로 0.8%인 델타의 5분의 1이고 계절성 독감의 두세 배 수준이다. 전파력이 크고 돌파감염도 상당하므로 앞으로 두세 달 동안 인구의 10%인 500만 명이 확진된다고 가정하면(실제 감염자는 1000만 명) 70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참고로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7000명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는 독감으로 매년 약 3000명이 사망하는데, 지난 2년 동안 독감 유행이 사라져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으므로 사망자 수의 관점에서는 코로나19가 독감을 대신한 셈이다. 거리두기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를 생각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엄청난 녀석임을 알 수 있다. 실제 거리두기와 백신접종이 부실했던 미국은 2년 동안 90만 명이 사망해 평년 독감 사망자(2년)의 10배에 이르고 그 결과 기대수명이 2년이나 줄었다. 참고로 미국의 독감 사망률은 우리나라의 2배다.

 

일각에서는 오미크론처럼 전파력이 커지고 병원성이 작아지는 변이의 등장이 바이러스 전염병의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인 것처럼 얘기하기도 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오미크론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전파력을 지니면서 병원성은 델타 또는 그 이상인 변이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희생자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거리두기를 강화해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더 강하고 병원성은 더 약해진 다음 변이를 기다리는 전략이 오히려 더 큰 희생을 불러올 수 있다. 오미크론처럼 상대적으로 병원성이 작은 변이가 유행할 때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 정면돌파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소아마비처럼 백신으로 집단면역이 형성되고 유지됐다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난해에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코로나19에서는 백신의 효과가 독감과 비슷한 패턴이라 지속력이 떨어지고 변이의 등장에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부스터샷의 결과가 보여주듯 주기적으로 접종하면 중증과 사망 위험성을 꽤 낮출 수 있다. 

 

2019년 학술지 ‘면역학의 경계’에는 코로나19처럼 백신의 효과가 불완전한 전염병에서 그나마 어떤 백신 유형이 더 효과적인가를 면역학 관점에서 설명한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예방 효과가 가장 오래 지속되는 건 생백신이다. 생백신은 병원성을 없애거나 미미하게 만든 바이러스이므로 면역계의 입장에서는 실제 상황을 겪은 것이다. 반면 손상된 바이러스나 바이러스 단백질 조각으로 만든 백신은 면역 반응이 불완전해 지속성이 떨어진다. 

 

분석에 mRNA 백신은 포함되지 않았지만(당시까지 나온 게 없었으므로) 결국 표면 단백질을 만드는 것이므로 후자들과 비슷할 것이고 실제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코로나19바이러스처럼 미지의 병원체로 생백신을 만들려면 불확실성이 커 시간이 걸린다. 설사 만들더라도 생백신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널리 쓰이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백신으로 코로나19를 감기 같은 경증 풍토병으로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코로나19에 걸리고 난 뒤 면역력은 어떨까. 최소한 생백신의 효과는 지니지 않을까. 코로나19 재감염 사례에 대한 분석은 얼마 되지 않지만, 중증과 사망 위험성은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첫 감염 뒤 얼마 안 된 시점이라 장기적인 효과는 아직 모른다. 오미크론 대유행을 방치해 많은 사람들이 감염됐음에도 추후 새 변이가 돌 때 코로나19가 감기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면승부를 걸어 초래할 희생이 너무 큰 것 아닐까. 그렇다고 언제까지 거리두기를 하며 살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나이에 따른 사망률 패턴이 변수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백신 효과가 불완전한 상태에서 코로나19가 감기로 바뀌려면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길밖에 없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재감염이 일어나더라도 병원성이 약해져 결국 감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때 병원성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바이러스 자체가 약하게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숙주인 인간의 면역계가 반복 감염을 통해 강해진 결과다. 다만 이 과정에서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하고 모든 나이대에서 감기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 이전에도 6가지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미 인류를 공략했다. 이 가운데 4종은 토착화돼 매년 감기를 일으킨다. 전체 감기의 15% 정도가 이들 코로나바이러스가 병원체다. 나머지는 코로나19바이러스와 가깝지만 병원성이 아주 큰 사스바이러스와 역시 무시무시한 메르스바이러스로, 둘 다 퍼지지는 못했다.

 

연구자들은 코로나19와 사스의 나이에 따른 치명률 패턴에 주목했다. 절대 수치는 큰 차이가 있지만, 나이에 따라 증가하는 경향은 같기 때문이다. 둘이 가까운 사이이므로 특이한 현상은 아니다. 반면 메르스는 아이와 노인일 때 치명률이 더 높은 ‘U’자 형이다. 감기 코로나바이러스 4종(이하 감기바이러스)은 모든 나이대에서 사실상 ‘0’이다. 그렇다면 감기바이러스는 코로나19바이러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순한 것일까.

 

‘당연한 걸 왜 묻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이 물음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다. 둘을 비교하려면 조건이 같아야 하는데 그렇게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새로 등장한 코로나19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건 모든 연령대에서 첫 경험이지만 감기바이러스는 어릴 때부터 감염이 반복되면서 노년에는 네 종류를 다 합치면 수십 번에 이를 것이다. 

 

만일 기존 감기바이러스가 전혀 진출하지 못한 지역이 있다면 이곳의 사람들이 감기바이러스에 처음 감염됐을 때도 가벼운 감기 증세만 보일까. 15세기와 16세기 유럽 탐험가들이 중남미에 도착한 뒤 현지인의 90%가 천연두 바이러스 등 처음 접한 병원체에 목숨을 잃은 것을 떠올리면 이게 쓸데없는 질문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 감기 환자의 혈청을 분석해 처음 걸린 나이대를 알아봤다. 우리 면역계는 처음 만난 병원체에는 감염 초기 면역글로불린 M(IgM)을 만들어 대응하고 이어서 면역글로불린 G(IgG)를 만들어 대응한다. 두 번째 감염부터는 IgG로 대응한다. 따라서 혈청의 IgM과 IgG의 수치를 분석하면 첫 감염인지 여부를 알 수 있다. 그 결과 감기 코로나바이러스 4종 모두 처음 감염된 평균 나이가 4살 내외이고 15살이 넘으면 사실상 모든 사람이 한번은 걸린 경험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감기바이러스가 모든 나이대에 감기 증세만을 일으키는 건 서너 살 때 첫 감염을 시작으로 수차례 감염이 반복되며 인체의 면역력이 강해져 바이러스의 병원성이 약해진 결과일까. 바꿔 말하면 코로나19바이러스도 사람들이 반복 감염되면 결국 다섯 번째 감기 코로나바이러스가 되는 것일까.

혈청의 면역글로불린 M(IgM) 수치로 감기 코로나바이러스 4종의 첫 감염 시기를 보여주는 그래프로 평균 네 살 무렵이다. 노인들이 감염돼도 감기 증세만 보이는 건 각 유형마다 수차례 감염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제공

 

 사스도 감기가 될 수 있어

 

연구자들은 감염을 겪은 뒤 인체의 면역 효율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눴다. 먼저 취약성으로 재감염이 되는 정도다. 아직 많은 데이터는 없지만 취약성 측면에서는 코로나19바이러스에 대해 면역 효율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한 번 걸린 뒤에도 감기처럼 한두 해 뒤 또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다음은 병원성의 면역 효율로 코로나19의 경우 첫 감염 이후 면역계가 기억하고 있어 재감염됐을 때는 병원성이 작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감염이 반복되면 결국 감기처럼 될 것이다. 끝으로 전파력의 면역 효율로 재감염에 따른 병원성 변화와 관계가 있다. 감염이 반복될수록 증상이 가볍고 일찍 회복하므로 배출되는 바이러스가 적어 전파력이 떨어진다. 바이러스 자체의 전파력과 병원성은 그대로더라도 숙주(사람)의 면역 효율에 따라 실질적인 전파력과 병원성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의 병원성은 나이에 굉장히 민감해 40대 이전까지는 중증 비율이 낮고 죽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50대, 60대로 넘어가면서 눈에 띄게 늘고 70대가 넘어가면 열에 한 명이 죽는 무시무시한 병이 된다. 연구자들은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수(R0)를 달리하며 시간에 따른 치명률 변화를 시뮬레이션했다. 첫 감염 때 치명률을 0.8%로 잡고 재감염 때 치명률을 0으로 보면 약간의 거리두기(R0=2)를 유지할 때 10년 뒤 치명률이 0.1%로 떨어진다. 그런데 거리두기를 하지 않아 R0가 4라면 4년 만에, R0가 6이면 2년 반 만에 0으로 감기가 된다. 

 

치명률이 14%나 되는 사스는 어떨까. 흥미롭게도 사스의 치명률 역시 어릴 때는 매우 낮고 나이가 듦에 따라 급격히 올라가 80대에서는 무려 70%에 이른다. 재감염됐을 때 거의 죽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R0가 2일 때 10년 뒤 치명률이 2%로 떨어진다. 놀랍게도 R0가 4나 6일 때는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각각 2년 반과 4년 만에 감기가 된다. 물론 이 사이 엄청난 희생이 따르므로 현실에서 이 시뮬레이션이 100% 재현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메르스는 재감염됐을 때 거의 죽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전혀 다른 패턴이 나온다. R0 값에 상관없이 10년이 지나도 30%대 치명률이 유지된다. 왜 그럴까. 코로나19나 사스와는 달리 나이대에 따른 메르스의 치명률은 ‘U’자 형이라 아기가 걸리면 절반이 죽는다. 따라서 재감염으로 치명률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처음 걸리는 사람의 비율이 여전히 높아 전체적인 치명률은 유지된다. 물론 현실에서 이를 따르다가는 인구가 급감하므로 역시 이론적인 얘기다.

 

 

 젊은이에게는 감기, 노인에게는 독감

 

코로나19로 돌아와서 백신접종으로 인한 면역 효율이 낮다면 주기적인 접종만으로는 코로나19가 감기가 되는 걸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거리두기로 감염을 피하는 전략을 지속하면 바이러스가 돌 때마다 처음 감염된 중노년층은 중증 및 사망 위험성이 만만치 않고(물론 백신을 안 맞았을 때보다는 훨씬 낮지만) 청장년층도 미감염 상태에서 나이가 들어 중노년이 되면 위험성이 높아진다. 수십 년이 지나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존 변이들보다 전파력이 크고 병원성이 작은 오미크론이 유행할 때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걸 너무 겁내지 말고 중환자 관리에 집중하며 대유행이 휩쓸고 지나가게 두는 게 코로나19를 감기화하는 길일 것이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중노년층, 특히 백신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CoV-2)와 사스(CoV-1)는 치명률(IFR)에서 큰 차이가 나지만 나이대가 들수록 커지는 패턴은 같다. 반면 치명률이 가장 높은 메르스(MERS)는 ‘U’자형 패턴이다(왼쪽). 재감염시 거의 죽지 않는다는 가정 아래 기초감염재생산수(R0)를 달리하며 시간에 따른 치명률 변화를 시뮬레이션해보면 거리두기를 하지 않을 때 코로나19와 사스는 수년 내 감기로 바뀌지만, 메르스는 30%대의 치명률을 유지한다(오른쪽).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질환이 감기로 바뀔 수 있는가 여부는 어린 시절 치명률에 달려있다. 사이언스 제공

오미크론이 휩쓸고 간 뒤 백신 정책은 나이대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다수가 감염된 경험이 있는 아이와 청장년층은 더 이상 백신을 맞을 필요가 없다. 그 뒤 재감염되더라도 감기 증상에 그칠 것이고 훗날 노년에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반면 몸조심하며 대유행 기간에 감염을 피한 중노년층은 독감처럼 매년 한두 차례 백신을 맞으며 여생을 보내야 할 것이다. 접종을 하지 않은 중노년층은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 나이 들어 코로나19를 만난 게 불행이라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오미크론 대유행 과정에서 꽤 희생이 있을 텐데 너무 비정한 얘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거리두기를 강화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병원성이 큰 변이가 다시 돌 때 강력한 거리두기로 감염자를 줄이더라도 치명률이 높아 사망자 수가 만만치 않게 나올 것이고 다음에 또 다른 변이가 돌 때 이 과정이 반복되며 마스크를 벗지 못할 것이다.

 

이건 막연한 가정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올가을 병원성이 델타에 준하는 새로운 변이가 돈다고 하자. 감염 경험이 있는 유럽인들에게 이 변이는 감기이고 이들이 다수라 전파력도 떨어질 것이다. 다만 감염 경험이 없는 중노년층은 여전히 위험하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후자의 비율이 줄어 희생자 수도 독감 수준이 될 것이다. 

 

반면 확진자가 생기면 도시를 폐쇄하는 '코로나 제로' 정책을 펴온 중국은 국민 대다수가 감염 경험이 없어 여전히 거리두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염 수준의 면역 효율을 보이는 백신이 개발되거나 약효가 뛰어나면서도 값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코로나19'로 남을 것이라는 말이다.

 

십여 년 전 우연히 읽은 칼럼이 생각난다. 힌두교에서는 나이 50살이 되면 세속의 삶을 정리하고 숲으로 들어가는 ‘임서(林棲)’라는 풍습이 있는데, 지금도 인도에서는 이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 만일 임서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 50세가 되면 사회에서 추방하는 나라가 있다면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로 고통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위해 희생했다는 말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지만 불완전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젊은이들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나마 병원성이 약한 편인 오미크론이 왔을 때 어린이와 청장년층에서 대유행하고 지나가게 놔두고 중노년층은 부스터샷을 맞고 알아서 조심하는 게 최선의 해결책 아닐까.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다.

 

오미크론 대유행이 지나면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거리두기를 해제하고 있다(왼쪽). 앞으로 새로운 변이가 돌더라도 유럽에서는 점차 감기화(중노년층은 독감화)돼 일상을 유지해도 희생자가 점점 줄어들겠지만, 코로나 제로 정책을 고집하는 중국에서는 여전히 코로나19로 남아 거리두기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오른쪽). 백신접종률이 높은 우리나라는 오미크론 대유행으로 유럽이 치른 희생의 10분의 1 수준으로 같은 수준의 면역 효율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연합뉴스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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