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도서]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Dong538 2022. 1. 30. 12:20

남편도 똑같은 말을 하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바보 같으니라고! 울 게 뭐람. 지금쯤 우리 애는 하느님 곁에서 천사들이랑 노래를 부르고 있을 텐데.’ 하지만 남편도 저와 똑같이 울고 있더군요. ‘여보, 니키투시카, 나도 그건 알고 있어요. 하느님 곁이 아니라면 어디 갈 데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 애는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없잖아요. 그전처럼 여기 앉아 있지 않잖아요!’ 하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저 한 번 만이라도 좋으니 그 애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밖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아이는 귀여운 목소리로 ‘엄마, 어딨어?’ 하고 외치곤 했어요. 그저 한 번만이라도 그 조그맣고 귀여운 발로 방 안을 콩콩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그런데 장로님, 그 애는 없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 애의 얼굴을 불 수도 없고,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습니다.”


부모의 집에서 내가 얻은 것은 귀중한 추억이었다. 인간에겐 유년 시절의 추억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예전에 그녀의 집에서 몇 번이나 그 사나이를 만난 적이 있었으나 자만심에 가득 차 있던 나는 그 사실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을 어째서 나 혼자만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물론 후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해본 결과 그 여자가 절대로 나를 조롱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걸 곰곰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복수심에 들끓었다. 나는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어떤 사람에게나 오랫동안 원한을 품고 있을 만한 인내심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나 자신의 노여움에 불을 질러 마침내 추악하고도 가소로운 인간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자고 싶은 생각이 없어 벌떡 일어나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무언가 비열하고 추악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남의 피를 흘리게 할 작정이었기 때문일까?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죽음이 두려워서? 아니면 남의 손에 죽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걸까?’ 이때 불현듯 그 까닭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전날 밤에 아파나시를 구타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리다니, 인간이 과연 이럴 수 있는가! 순간 예리한 바늘 끝에 내 영혼이 찔린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마르켈 형님이 임종을 앞두고 하인들에게 한 말을 떠올렸다. “당신들은 참으로 친절한 분들이오. 왜 나에게 이토록 극진한 시중을 드는 거요?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거요? 나는 정말 이런 대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걸까요?” 그러자 ‘아, 도대체 내가 무슨 자격으로 나와 똑같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인간에게 시중을 들게 한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난생 처음으로 내 머리를 스쳤다.


꾸준히 일하라. 만일 그대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할 일을 다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 곧 일어나 그 일을 하도록 하라. 그리고 그대 주변 사람들이 짓궂고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이어서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 앞에 엎드려 용서를 빌어라.

그들이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 것은 그대에게도 책임이 있다. 설혹 그들이 너무 화가 나 있어 말을 붙일 수 없다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대를 버리고 강제로 몰아내려 하거든 혼자서 대지에 엎드려 땅에 키스하며 눈물로 땅을 적시도록 하라. 그렇게 하면 고립된 그대를 누구 한 사람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땅은 그대의 눈물의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만일 그대가 많은 죄를 지었거나 아니면 돌발적으로 죄를 저질러 그 때문에 죽도록 괴로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올바른 사람을 생각하고 기뻐하라. 그대는 죄를 범했지만 그 대신에 죄를 범하지 않은 올바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기뻐하라.

만일 다른 사람의 악행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껴 그들에게 복수하고픈 생각이 들 때에는 그런 감정을 무서워하고 기피하도록 하라. 그 고통을 감수하고 그것을 참고 넘기면 그대의 마음은 편안해질 것이고, 그대 역시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는 대중과 미래를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절대로 보수는 바라지 말라. 바라지 않더라도 그대들은 이미 지상에서 큰 보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체 높은 자, 권세 있는 자를 두려워 말고, 항상 현명하고 의젓하게 처신하라. 무슨 일이든 절도를 지키고 적절한 때를 알도록 하라. 그리고 그것을 배워 익히도록 하라. 홀로 고요 속에서 기도드려라. 대지에 입맞추고 끊임없는 열성으로 그것을 사랑하라. 환희의 눈물로 대지를 적시고 그 눈물을 사랑하라. 또 그 환희를 부끄러워 말고 귀중히 여기도록 하라. 그것은 소수의 선택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하느님의 큰 선물이다.


‘지옥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그것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오는 괴로움’ 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배심원 여러분! 이 사건은 러시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고, 또 특별히 무서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공포스러운 것은 이 무시무시한 사건을 보고도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개인의 죄악에 놀랄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그러한 습성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신문, 잡지는 유치하고 비겁하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우리가 거의 날마다 거기서 읽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아, 그것은 이 사건마저 빛을 잃게 하는 가공할 만한 사건들의 보도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형사 사건의 대부분이 우리 국민에게 습관화된 일반적인 불행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청년들은 무턱대고 자살을 합니다. 그들은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햄릿 식 의문 같은 건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본건의 불행한 희생자 표도르 파블로비치 씨도 어찌 보면 순진한 어린애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모두 그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들 사이에서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처럼 비참한 최후를 마친 이 ‘일가의 가장’을 보십시오. 가난한 식객으로 인생행로를 출발하여 아내의 지참금으로 약간의 재산을 만든 그는 지능적인 사기꾼이자 경박한 고리대금업자였습니다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점점 기세가 등등해져서 굴종적 성격은 자취를 감추고, 조소적이면서도 악의에 찬 냉소를 흘리는 호색한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노인의 윤리관이라는 것은 ‘내가 죽은 뒤엔 될 대로 되라’였습니다. ‘세상이 다 불타버려도 나만 무사하면 된다’는 심보였습니다.


“배심원 여러분!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특히 주변 친구들의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비교할 때,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의문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자녀가 이 의문에 대한 대답이란 틀에 박힌 것이어서 ‘아버지가 너를 낳았다. 너는 아버지의 혈육이다. 그러니까 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낳을 때 나를 사랑했을까?’ 하고 자녀는 반사적으로 의문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점점 더 사고를 확장하여, ‘아버지가 나를 낳은 것은 나를 위해서일까? 아버지는 그 결정적인 순간, 술기운에 자극을 받았을지도 모를 그 욕정의 순간에 나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작 나한테 음주벽을 유전시켜 주었을 뿐인데, 나는 왜 아버지를 사랑해야만 하는가?’ 하고 자문할 것입니다. 아아, 여러분은 필경 이러한 의문을 잔인하고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하실 테지요? 그러나 젊은이에게 지나친 자제를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천성을 문 밖으로 내쫓으면 이번에는 창문으로 날아들어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금속’이니 ‘유황’ 따위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신비적 개념의 명령을 따르지 말고, 이성과 박애심의 명령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을 아버지 앞에 세워놓고 이렇게 질문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씀해 주십시오. 왜 저는 아버지를 사랑해야 합니까?’ 그때 만일 그 아버지가 아들의 물음에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비적 편견에 기초를 둔 그런 가정이 아니고, 이성적인 자의식과 엄격한 박애적 기초 위에 세워진 정상적인 가정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 가정은 한순간에 파탄을 맞을 겁니다. 배심원 여러분! 우리 법정은 진리와 건전한 사상의 학교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