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인문] 어른의 문답법 - 피터 버고지언, 제임스 린지
피터의 스승인 프랭크 웨슬리Frank Wesley포틀랜드 주립대학 심리학 교수가 1970년대에 수행한 연구가 있다. 웨슬리는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잡힌 미군 포로 중 일부가 북한행을 택한 이유를 분석했다. 조사 결과 북한행을 택한 미군은 거의 전부 한 훈련소 출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훈련소에서 정신교육을 통해, 북한 사람은 잔학무도한 야만인이고 미국을 경멸하며 미국을 궤멸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북한군에게 친절하게 대우받고나자, 머릿속에 주입되었던 지식이 산산이 허물어져버렸다. 결국 이들은 북한 사람에 대해 특별히 교육받지 않았거나 덜 편향된 교육을 받은 군인들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북한행을 택했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거나 움직이고,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고, 우정을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상대방에게 호의와 공감과 연민을 보여주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품위를 지켜주어 심리적으로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2사람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게 우호적으로 대하게 되어 있다.
가장 먼저 목표로 삼아야 할 일은 상대방의 추론을 이해하는 것이다.4적대적 사고, 즉 맞서고, 다투고, 따지고, 비웃고, 이긴다는 생각을 버리자. 그보다는 손잡고, 힘을 합치고, 듣고, 배운다고 생각하며 협력적 사고를 하자.
듣기를 중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요령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말할 차례를 양보한다.
상대방의 말과 내 말이 겹치면, 말을 멈추고 “먼저 말씀하세요” 하며 양보한다. 상대방이 “아니요, 먼저 말씀하세요” 하면 “괜찮습니다, 먼저 말씀하세요”라고 대답하며 상대방이 먼저 말하게 한다.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고 몸도 상대방을 향한다. 상대방의 말을 이해했을 때는 고개를 끄덕여주자. 이해한 척 시늉만 해서는 안 된다. 건성으로 듣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온전히 집중한다.
이렇게 큰 차이가 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5장의 ‘역할 부여’에서도 그중 한 이유를 다룬다), 그중 하나는 메시지 전달에 대한 거부감이다. 우리는 남이 전하는 메시지는 거부하는 경향이 있고, 스스로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견해는 잘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33무슨 견해를 들려주어도 받아들이지 않던 친구가 시일이 지난 후 자기가 ‘직접’ 그 견해에 우연히 도달하고는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바로 그런 예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내가 먼저 본보기를 보이자.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해주길 원하면,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자. 조용히 들어주길 원하면, 나부터 조용히 듣자.1언성을 높이길 원하면, 내가 언성을 높이자.2생각을 유연하게 바꾸길 원하면, 내가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자. 예의를 지키길 원하면, 내가 예의를 지키자. 근거를 제시하길 원하면, 내가 근거를 제시하자. 내 말에 귀 기울여주기를 원하면, 나부터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자. 말로는 쉬워도 실천하긴 어렵다. 하지만 꼭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특히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원칙은 대화가 엉뚱하게 엇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1. 모르면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모른다는 건 수치스러운 딱지가 아니라 정직, 겸손, 진실성을 드러내 보이는 행위다. 상대방이 “모르겠다”라고 말하면 칭찬을 해주자.
소셜미디어에 관해 두 가지만 유념하자. 첫째,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글은 보통 자기 생각을 바로잡아달라고 올리는 글이 아니다. 그런 곳에 글을 올리는 목적은 대개 자기 생각을 ‘확인받기’ 위함이다. 뭔가를 보고 분개한 사람은 남들도 함께 분개해주기를 바라면서 공유한다. 어떤 견해를 자기 개인 페이지에 올릴 만큼 그 견해에 동조하는 사람이라면, 그 견해를 남들에게도 알리려는 것이지 비판을 청하는 건 아닐 것이다.
좋은 인간관계야말로 건강과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논쟁에서 이긴다고 그만큼 건강하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1임종을 앞둔 사람들이 좋은 삶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입을 모아 꼽는 것도 좋은 인간관계다.2건강한 인간관계의 기틀은 자기가 옳음을 인정받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뜻깊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요소는 신뢰성, 친근함, 공감, 즐거운 대화, 배려와 호의, 진정성, 공통의 관심사,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 등이다. 이는 대부분 정치적, 종교적 견해와는 관련이 거의 없다. 사실 친구나 가족 사이는 그런 견해 차이는 접어두어도 별문제 될 일이 없다.3
그럼 누군가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간단하다.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게 놔두자.6특히 친구 사이면 더더욱 그렇게 하자. 고쳐주거나 따지고 싶어도 그냥 가만 놔두자. 사실 나와 친구가 둘 다 조금씩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게 놔둔다’라는 정신은 언뜻 보이는 것보다 심오한 의미가 있기도 하다. 상대방이 현실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건 기껏해야 내 ‘생각’일 뿐이지, 확증된 ‘사실’도 아니다. 고작 내 생각 때문에 관계에 금이 가게 할 이유가 없다.7
남의 믿음을 고쳐주려는 시도는 결과가 좋지 않을 때가 많다.8우정이 손상되고 관계가 허물어질 수 있다. 남의 믿음을 비판하는 일은 믿음에 그저 관여하는 것과 다르다. 더군다나 남의 도덕적 믿음을 비판하려면 어떤 대가가 따를 수 있는지 잘 알아야 한다. 설령 상대가 도덕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도, 꼭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도덕적 믿음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 문화나 개인적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무지해서일 수도 있다. 추론을 통해 그릇된 도덕적 견해에 도달했다고 해서 악한 사람은 아니다. 추론이 잘못되었을 뿐이다.9
하지만 의견 차이가 큰 사안에 대해 친구와 대화를 나눠보기로 마음먹었다면, 관계를 더 두텁게 할 기회로 삼자. 이때 바람직한 방법이 있고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듣는 것이다. 친구가 어떤 견해를 가졌으며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정말로’ 이해해보자.
진심으로 부딪혀본다.
친구가 가진 믿음이 친구 관계를 재고해야 할 만큼 심각하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화를 열심히 시도해봐야 할 주제다. 이럴 때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사적인’ 대화를 청해보자. 네가 그런 믿음을 가져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어쩌면 그 믿음으로 인해 두 사람 간에 골이 너무 크게 벌어져 친구 관계를 끊어야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분노와 원망을 품는 것보다 한번 제대로 논의해보고 헤어지는 게 낫다.15친구의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려거든, 내 동기가 친구의 행복과 안녕을 진심으로 걱정해서인지 살펴보자. 내가 옳음을 확인받기 위해서라면 그만두자. 무엇보다, 선의를 잃지 말자.
3. “혼자 옳으려면 혼자 살라You can be right or you can be married.”
부부 상담에서 흔히 하는 말이다. 자기가 옳다는 걸 인정받으려고, 상대방의 행동을 고쳐주려고, 혹은 논쟁에서 이기려고 고집을 피우다가 좋은 관계가 파탄에 이르는 예가 많다. 그냥 친구가 잘못 알고 있게 놔두자.
‘프레임(틀)을 바꾼다’는 말은 표현 방식을 바꾸어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주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사안에 뭔가 다른 방식으로(이를테면 거부감이 덜 드는 방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다. 어떤 대화건 프레임을 바꾸어 새롭게 제시할 수 있다.39
프레임을 바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은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상대방이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끔 방향을 바꾸어주는 것이다. 바로 피터의 아내가 썼던 방법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어떤 사안이 있을 때 그 사안 자체보다 밑바탕에 깔린 이해관계, 감정, 전제 쪽으로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40가령 총기 규제 등의 정치적 주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고 싶으면, 대화의 프레임을 바꾸어 밑바탕에 깔린 이해관계를 놓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안전과 보안, 개인의 권리 등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어떻게 잘 절충할 수 있을지 논의한다. 그러면 정치적인 문제에서 안전 문제로 프레임이 바뀌게 된다.
3.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상대방이 “맞아”라고 반응할지 생각해보자.44
그리고 그에 따라 프레임을 바꾼다. “그래”는 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맞아”는 상대방의 견해를 이해했다거나 받아들인다는 의미다.45“맞아”라는 반응을 끌어내려면 부정적으로 보이는 사안이 긍정적으로 보이게끔 프레임을 바꾸어야 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