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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설] 인생 (살아간다는 것) - 위화

Dong538 2021. 11. 4. 17:40

그때 딸 펑샤가 후다닥 문을 밀치고 들어와 서둘러 문을 닫았다네. 그러고는 작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어.
“아빠, 빨리 숨으세요. 할아버지가 아빠 때리러 와요.”
내가 움직일 생각을 안 하자 다가와 손을 잡아끌더구먼. 아무리 끌어당겨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대로 울어버렸지. 펑샤가 우니까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기분이었다네. 그렇게 어린 나이에도 자기 아비를 감쌀 줄 알다니…….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나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니까.


뜻밖에도 아버지는 자리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으셨네. 가슴 앞쪽에 있던 이불이 바닥으로 떨어지긴 했어도 말이야.
“푸구이.”
아버지는 내 이름을 한 번 부르시고는 침대의 가장자리를 툭툭 치며 말씀하셨지.
“앉아라.”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곁에 앉으니, 아버지가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게 아니겠나. 그런데 그 손이 얼음장같이 차서 내 마음도 함께 얼어붙었다네. 아버지는 가볍게 말씀하셨어.
“푸구이, 노름빚도 빚은 빚이다. 예부터 빚은 갚지 않을 도리가 없단다. 우리 땅 백여 묘와 이 집을 모두 저당 잡혔으니 내일 사람들이 동전을 가져올 거다. 나는 늙어서 짊어질 힘이 없으니 네가 지고 가서 빚을 갚고 오너라.”
아버지는 말을 마치고 또 길게 한숨을 쉬셨네. 그 말씀을 들으니 눈이 시큰시큰하더라구. 나는 아버지가 나와 사생결단을 내실 생각이 아니란 걸 알았지. 하지만 아버지 말씀은 마치 무딘 칼로 목을 베이고도 머리가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처럼 날 고통스럽게 했다네. 아버지가 내 손을 탁탁 치면서 말씀하셨지.
“가서 자라.”


그 말을 듣더니 룽얼도 서둘러 말하더군.
“그래, 그렇지. 한잔 하세. 내 한잔 대접하지.”
나는 고개를 저었어.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하루아침에 내 비단옷은 엉망이 되었고, 어깨에서는 피가 흘러내렸다네.
혼자 집으로 가면서 울고 또 울었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겨우 하루 돈을 나르고도 사지가 다 풀릴 정도로 힘든데,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상들이 고생했을까 싶더라구. 그제야 난 아버지가 왜 은화가 아니라 동전을 고집했는지 알게 됐지. 바로 그런 이치를 깨닫게 하려고, 그러니까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하려고 그러신 거야. 그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어. 그대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허리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꺼이꺼이 울었지.


그곳에서 나는 종종 젊은 세대가 그들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나이를 개 몸뚱어리로 먹었나.”
그러나 푸구이 노인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는 새의 발톱이 나뭇가지를 꽉 움켜잡듯 나를 단단히 사로잡았다.


어머니는 밭둑에 앉아 내가 호미질 하는 모습을 보시다가 종종 소리를 치셨어.
“다리를 베지 않도록 조심해라.”
낫질을 할 때면 더 맘을 놓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말씀하셨지.
“푸구이, 손 베일라.”
어머니가 옆에서 주의를 줘도 소용이 없었다네. 일이 너무 많아 되도록 빨리 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서두르다 보면 다리를 찢기고 손을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손이나 발에서 피가 나면 어머니는 다급한 마음에 그 짧은 다리로 헐레벌떡 뛰어오셨다네. 진흙 한 덩이를 뭉쳐 피가 나는 곳을 틀어막으시고는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하셨어. 한번 말씀을 시작하셨다 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갔지. 그래도 뭐라 대꾸할 수가 없었어. 그랬다가는 어머니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거든.


자전은 유칭이 태어난 지 육 개월쯤 되었을 때 돌아왔다네. 가마도 타지 않고, 아이를 업은 채로 십 리도 넘는 길을 걸어서 말일세. 유칭은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그 작은 머리를 자전의 어깨에 기대고는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면서 이 아비와 인사를 했지.
자전은 회색빛이 감도는 붉은 치파오를 입고, 손에는 푸른 바탕에 흰 꽃무늬가 있는 가방을 들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왔다네. 그녀가 돌아오는 길 양쪽으로 유채꽃이 활짝 피어 황금물결을 이루었고, 그 곁을 꿀벌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지. 자전은 우리 초가집 문 앞에 이르러서는 곧장 들어서지 않고, 그 앞에 서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네.
어머니는 집 안에서 짚신을 삼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웬 아름다운 여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고 하시더군. 마침 자전이 햇빛을 가리고 서 있던 터라, 마치 몸에서 환한 빛이 나오는 것 같았던 모양이야. 어머니는 자전은 물론 자전이 업고 있던 유칭도 알아보지 못하셨지. 그래서 이렇게 물으셨다네.
“뉘집 아가씬가. 누굴 찾으시는지?”
자전은 그 말을 듣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지.
“저예요. 자전이에요.”


자전이 돌아와 우리 집은 완전해졌다네. 내 일을 도울 조수도 생긴 셈이고.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내 여자를 아끼기 시작했지. 이런 점은 자전이 나한테 슬쩍 알려준 건데, 사실 나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네. 나는 자전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
“당신은 밭둑에 가서 좀 쉬어.”
자전은 성안에서 자란 아가씨라고 하지 않았나. 가녀린 그녀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팠지. 자전은 쉬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어.
“힘들지 않아요.”
어머니 말씀이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도 두렵지 않은 법이라 하셨지. 자전은 치파오를 벗고 나처럼 무명옷 차림으로 온종일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힘들게 일하면서도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네. 펑샤도 좋은 아이였지. 우리가 벽돌과 기와로 된 집에서 초가집으로 이사를 왔는데도 여전히 신이 난 모습이었고, 거친 음식을 먹여도 토하지 않았으니까. 동생이 돌아온 뒤로는 더욱 신이 나서 밭으로 나를 따라오지 않고, 동생을 안아줄 생각만 했다네. 그러나 유칭은 측은하기 그지없었지. 제 누이는 그래도 사오 년은 좋은 시절을 보냈는데, 그 애는 성안에서 겨우 반년을 살고 내 곁에 와서 고생을 하고 있으니 말이야. 내가 가장 미안하게 생각한 사람은 바로 내 아들이었다네.


“어머니는?”
자전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며 나를 바라보았어. 그 모습에 나는 어머니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나셨다는 걸 알게 됐지. 그대로 문간에 선 채 고개를 수그리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네.
어머니는 내가 집을 떠난 지 두 달이 좀 넘었을 무렵에 돌아가셨다네. 자전이 그러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몇 번이나 이런 말씀을 하셨대.
“푸구이는 노름을 하러 간 게 아니란다.”
자전은 내 소식을 들으러 수도 없이 성안에 갔는데, 내가 군대에 잡혀갔다고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더군. 그래서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거야. 불쌍한 우리 어머니, 돌아가실 때 아들놈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셨으니…….


후에 나는 생각을 달리 하게 됐지. 내가 나 자신을 겁줄 필요는 없다고 말일세. 그게 다 운명인 거지.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 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내 나머지 반평생은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
나는 자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네. 앞으로 우리가 또다시 헤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지.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많이 늙은 걸 보니 가슴이 아팠어. 자전의 말이 맞아. 가족끼리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안에 이르러 그 집이 가까이 보일 때쯤 가로등 밑에 펑샤를 내려놓고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네. 우리 펑샤는 얼마나 착한 아이였던지, 그때까지도 울지는 않고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보기만 하더라구. 내가 손을 내밀어 그 애 얼굴을 쓰다듬어주니까, 그 애도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매만지더군. 그 작은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는데, 다시는 그 애를 돌려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펑샤를 도로 업고 길을 돌아 나왔지. 펑샤는 그 작은 팔로 내 목을 꼭 감아 안더니 얼마쯤 가서 갑자기 나를 꽉 껴안았다네. 그 애도 자기를 다시 집으로 데려간다는 걸 알았던 게지.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더니, 자전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우리를 바라보더군. 나는 결연하게 말했지.
“우리 모두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펑샤를 돌려보내지 않겠소.”
그 말에 자전은 배시시 웃어 보이더군. 웃는 얼굴 위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지.


다음날 저녁, 평소와 다름없이 유칭을 보러 성안에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자전은 거기 가지 말고 자기를 업고 마을이나 한 바퀴 돌자고 하더군. 그래서 펑샤한테 엄마를 안아서 내 등에 올려달라고 했지. 자전은 갈수록 말라서 온몸에 뼈만 남은 것 같았다네. 문을 나서자마자 자전이 말했어.
“마을 서쪽으로 가고 싶어요.”
거기는 유칭이 묻혀 있는 곳이었지. 입으로는 그러자고 했지만,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마을 동편 어귀 쪽으로 하염없이 걸어갔다네. 그때 자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
“푸구이,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마세요. 나 유칭이 죽었다는 거 알아요.”
자전의 말에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네. 다리도 확 풀려버렸지. 그러고 있는데 목 주변이 서서히 젖어들더군. 자전의 눈물이었네.
“유칭을 보러 가게 해주세요.”
더 이상은 속일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업고 마을 서쪽으로 갔지. 자전이 낮은 목소리로 알려주더군.
“밤마다 당신이 마을 서쪽에서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유칭이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유칭의 무덤 앞에 이르자 자전은 등에서 내려달라고 하더니, 무덤 위에 그대로 엎어졌다네.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고, 무덤 위에 놓은 두 손은 꼭 유칭을 쓰다듬는 듯했지. 하지만 기력이 없어 손가락 몇 개를 꼼지락거릴 뿐이었어. 그런 모습을 보니 괴로워서 숨이 탁 막혀버릴 것 같더구먼. 그렇게 몰래 묻어서 자전이 마지막으로 아들 녀석 얼굴 한번 못 보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자전은 한낮에 죽었다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그녀가 눈을 번쩍 뜨더군. 옆에 다가가도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곧장 부엌으로 가서 죽을 한 사발 끓였지. 죽을 들고 침대 앞에 가서 앉자, 눈을 감고 있던 자전이 갑자기 내 손을 꽉 잡더라구. 그 사람한테 아직도 그렇게 큰 힘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지. 깜짝 놀라 슬며시 손을 빼내려 했지만 뺄 수가 없었어. 나는 얼른 죽을 의자에 놓고, 손을 빼서 자전의 이마를 짚어봤다네. 다행히 아직 따뜻해서 마음이 좀 놓였지. 자전은 잠이 든 것처럼 편안한 얼굴이었고, 고통스러운 기색도 전혀 없었어. 그런데 얼마 못 가서 나를 잡고 있던 손이 싸늘하게 식었다네. 팔을 만져보니 팔도 조금씩 식어갔고, 두 다리도 싸늘해졌지. 그렇게 온몸이 차가워지고, 오직 가슴의 한 부분에만 온기가 남았다네. 자전의 가슴에 손을 대는 순간, 거기 남아 있던 열기가 내 손가락 사이로 조금씩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 잠시 후 나를 움켜잡았던 손이 풀어지더니 내 팔 위로 널브러졌지.


펑샤가 죽은 뒤에 얼시는 기운을 회복하지 못했어. 원래도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다 펑샤가 죽고 나니 더욱 말수가 적어졌지.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면 그저 “음” 소리 한 번 하면 그뿐이었고, 나를 만나야 그나마 몇 마디라도 했다네. 쿠건은 우리 두 사람의 생명줄이었지. 녀석은 자랄수록 펑샤를 닮아갔는데, 그럴수록 우리 가슴도 미어졌다네. 얼시는 가끔 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해서 내가 장인된 도리로 몇 마디 해줬지.
“펑샤가 죽은 지도 꽤 되었으니, 잊을 수 있으면 잊어버리게나.”
그때 쿠건은 세 살이었는데, 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흔들며 우리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듣더구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일세. 얼시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에 그러더군.
“저한테는 오직 펑샤를 그리워하는 복만 있을 뿐이에요.”


베개 밑에 십 위안을 넣어뒀는데 그 돈은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건드리지 않을 거야. 마을 사람들 모두 그 돈이 내 시체를 거둬줄 사람 몫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또 내가 죽은 다음 자전이랑 우리 애들이랑 함께 묻히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말이야.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