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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설] 일광유년 - 옌롄커

Dong538 2023. 1. 20. 09:40

순간 그녀는 자신이 아직 밀을 베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난 것 같았다. 이곳에 있는 것이 바로 밀을 베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또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한 번 또 한 번 낫질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력을 잃었다. 단번에 힘을 다 써버린 것 같았다. 낫질을 할 때마다 그녀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있는 힘을 전부 끌어내야 했다.

결국 그녀는 일사병에 걸리기라도 한 듯 녹초가 되어 밀밭에 주저앉고 말았다. 한동안 눈물이 얼굴 위로 마구 흘러내렸다. 온 세상을 소리 없이 그 눈물 안에 가라앉힐 것만 같았다.


물처럼 흐르는 세월이 두바이의 세밀함 속에서 천천히 흘러가면서 마을 곳곳에 맑고 투명한 울림을 남겼다. 남자들이 떠난 지 두 달 남짓 되어 보리를 수확하고 가을 작물을 심었다. 웃자란 옥수수도 이미 기다란 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밤마다 작물들이 자라는 따뜻하고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사삭 가는 빗소리 같았다.


주추이가 바늘 같은 모습으로 또 다른 후퉁으로 꺾어져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쓰마란은 머리 위에 내려앉은 눈을 털어냈다. 갑자기 란씨네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몸에서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는 참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또 마음이 따스해졌다. 뭔가를 찾으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걸 길에서 주운 것 같았다.


그러나 링인거의 개통을 앞둔 보름 동안 서너 명의 남자가 임시 가묘로 쓰이는 토담집 안 서너 개의 관에 누워 있을 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어느새 란쓰스가 깨끗이 물러가버렸다. 아주 깨끗하게 물러갔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가 다시 여자를 떠올리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피로와 졸음이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잊게 했다. 오늘 아침 마을로 돌아올 때는 란쓰스가 마을 어귀로 마중 나올까 하는 기대도 전혀 갖지 않았고 그녀의 집 앞을 지나칠 때도 고개를 돌려 버드나무 대문을 쳐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자신의 변화에 대해 란쓰스에게 약간 미안했다. 오랫동안 란쓰스를 깨끗이 잊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의아함과 괴로움을 느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물건을 찾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해놓고는 막상 그 물건을 찾게 되자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목이 쉬도록 울부짖었다. 한나절이나 쉬지 않고 울부짖었다. 한나절 동안 마을 상공이 그의 외침으로 가득 찼다. 그의 울음이 햇빛을 푸른빛과 자줏빛으로 어둡게 물들였다.


이때부터 쓰마샤오샤오와 두옌은 서로 서먹서먹해졌고 원한이 온 산과 다리, 강과 바다에 가득 찼다. 여동생 쓰마타오화마저도 이때부터 쓰마씨 집안과 여러 해 동안 왕래가 없었다.


쓰마샤오샤오가 말했다.

“부모로서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하느님으로서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마른 우물처럼 침묵하고 있었다.

쓰마샤오샤오가 말했다.

“내게도 장애아가 셋이나 있어요.”

하지만 쓰마샤오샤오는 바위가 무너지고 하늘이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그의 한마디가 툭 하고 입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자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줄곧 아무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던 란바이수이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빈 그릇을 내려놓고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쓰마샤오샤오 앞을 지나쳐 맥장 동쪽으로 가서는 란치스와 란류스, 란우스를 데리고 말없이 마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쓰마샤오샤오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가 손을 잡고 가는 세 장애아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이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사실을 상기한 그는 란바이수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야릇한 후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