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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설] 1984 - 조지 오웰

Dong538 2022. 10. 13. 23:25

맑고 쌀쌀한 4월 어느 날, 시계들이 열세 차례 치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25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도 작고 선명한 글자로 똑같은 슬로건이 새겨져 있었고 다른 면에는 빅 브라더의 두상이 있었다. 동전에서도 그 눈은 사람을 따라다녔다. 동전, 우표, 책 표지, 깃발, 포스터, 담뱃갑 포장지.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그 눈이 언제나 사람을 지켜보고 있고 목소리는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 잠을 자고 있든 깨어 있든, 일하거나 식사 중이건, 실내에 있든 밖에 있든, 목욕 중이거나 침대에 있을 때에도. 달아날 길은 없었다. 두개골 안, 몇 제곱센티미터의 공간을 제외하면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윈스턴과 줄리아 두 사람 모두 알았고, 어떤 면에서는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자신들이 누워 있는 침대만큼이나 명백하게 감지될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마치 죽음이 예정된 인간이 종이 울리기 5분 전 쾌감의 마지막 한 조각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일종의 절망적인 관능에 사로잡혀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안전할 뿐 아니라 영원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환상에 빠지는 때도 있었다. 둘 다, 자신들이 그 방에 있는 동안에는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녀는 종종 공식적인 신화를 쉽게 받아들이곤 했는데, 단지 진실과 허위의 차이가 그녀에게는 별로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당이 비행기를 발명했다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믿었다(윈스턴이 학교에 다니던 50년대 후반에는 당이 발명했다고 주장한 건 헬리콥터 정도였지만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서 줄리아가 학교에 다닐 때 당은 이미 비행기를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한 세대가 더 지나고 나면 증기 기관을 발명했다고 하리라). 그가 비행기는 그가 태어나기 전, 그리고 혁명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말을 했을 때 그녀는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누가 비행기를 발명했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당 원칙의 여러 곁가지들에 대해서 그녀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INGSOC의 신념이라든가 이중사고,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것, 객관적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신조어의 사용들에 대해 말을 꺼내면 그녀는 언제나 따분해하고 혼란스러워하면서 자기는 그런 것에는 관심을 둔 적이 없노라고 말했다. 전부 다 헛소리라는 걸 아는데 뭐 하러 그런 것을 걱정한단 말인가? 자신은 언제 환호할지 언제 야유를 퍼부을지 알고 있으며 그것만 알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가 그런 얘기를 계속하면 그녀는 당황스럽게도 아예 잠들어 버리곤 했다. 그녀는 아무 때나 어떤 자세로든 잠들 수 있는 부류였다.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그는 정통성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얼마나 쉽게 정통성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당의 세계관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세계관을 가장 성공적으로 주입시킬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일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벌어지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정도로 공적인 사건들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현실에서 벌어지는 극도로 악명 높은 침해 행위까지도 고스란히 받아들이기가 쉬웠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자 그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음을 전보다 더 확실하게 알았다. 비록 그 소수가 하나뿐일지라도 소수에 속한다고 해서 미친 것은 아니다. 진실과 진실 아닌 것이 있다. 온 세상과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에 매달린다면 미친 것이 아니다.



그가 음식을 받게 될 경우에는 그 음식 속에 면도날이 감춰져서 전달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줄리아에 대한 생각은 그것보다 더 흐릿했다. 어느 곳에선가 그녀 역시,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지 몰랐다. 그는 생각해 보았다. ‘만약 내 고통을 두 배로 늘림으로써 줄리아를 구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그렇게 할까? 그렇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내린 결정일 뿐이다. 감정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지금 당장 느끼는 고통과 앞으로 다가올 고통 이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실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어떤 이유로든 자신이 받는 고통이 늘어나기를 원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그 문제는 아직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래 끌지는 않을 거야.” 그가 말했다. “언제든 자네가 원하는 때 그것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어. 모든 것이 자네가 선택하기에 달린 거야!”
“당신이 이렇게 한 겁니다!” 윈스턴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어요.”
“아냐, 윈스턴. 그건 자네가 한 짓일세. 자네가 당에 반기를 들었을 때 이미 자네가 받아들인 사실이라네. 이 모든 것이 그 최초의 행동에 들어 있었네. 자네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네.”